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대개 그 힘든 생각과 감정을 없애려 애씁니다. 불안하면 불안을 지우려 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이 틀렸다고 반박하려 하죠. 많은 치료도 이 방향을 따릅니다. 예컨대 인지행동치료는 왜곡된 생각을 찾아내 더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꾸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 발상에서 출발하는 치료가 있습니다. 고통을 없애려 하지 말라는 것. 오히려 없애려 몸부림치는 그 싸움이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든다는 것. 대신 그 고통과 맺는 관계를 바꾸고, 그러는 동안에도 정말 중요한 것을 향해 걸어가라는 것. 이것이 수용전념치료(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의 출발점입니다.

없애는 게 아니라 관계를 바꾼다

ACT는 이른바 '3세대 인지행동치료'로 분류됩니다. 핵심 개념은 '심리적 유연성'입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힘든 생각과 감정이 찾아와도 그것에 휘둘리거나 매몰되지 않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 계속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불안, 슬픔, 자기비판 같은 내적 경험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다는 것. 그걸 억지로 없애려는 시도 자체가 종종 문제를 키운다는 것입니다. 마치 늪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것처럼요. ACT는 발버둥을 멈추고, 그 감정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면서,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법을 훈련합니다.

발상의 전환. ACT의 목표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어도 잘 사는 것'입니다. 증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그 싸움을 내려놓고 소중한 삶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핵심입니다.

생각을 '반박'하는 대신 '흘려보낸다'

ACT와 전통적 인지행동치료의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 '생각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인지행동치료가 "그 생각이 정말 사실일까?" 하고 생각의 내용을 검토하고 바꾸려 한다면, ACT는 생각의 내용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생각과 거리를 둡니다. '나는 실패자야'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과 싸우거나 반박하는 대신, "지금 내 마음에 '나는 실패자야'라는 생각이 지나가고 있구나" 하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탈융합이라고 부릅니다. 생각을 사실이 아니라 그저 마음속을 흘러가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연습이죠.

ACT에서 즐겨 쓰는 비유가 있습니다. 시냇물 위로 떨어진 나뭇잎을 떠올려 보라는 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뭇잎에 하나씩 올려놓고 그저 흘러가게 두는 심상 훈련입니다.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고 지나가게 두는 것. 생각을 통제하려는 힘겨루기에서 벗어나는 연습입니다.

여섯 개의 축, 그리고 '가치'

ACT는 심리적 유연성을 여섯 가지 과정으로 나눠 다룹니다. 방금 이야기한 수용과 탈융합에 더해, 지금 이 순간에 접촉하기, 생각에 사로잡힌 '나'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로 서기, 그리고 가치와 전념행동입니다.

이 중에서 ACT를 다른 치료와 특히 구별해주는 것이 '가치'입니다. ACT는 묻습니다. 증상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동안 멈춰 있던 당신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 배움을 이어가는 것, 관계를 회복하는 것. 그 가치를 향한 작은 행동을 지금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아지고 나서가 아니라, 불안과 우울을 안은 채로도요. 그래서 이름에 '전념(commitment)'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효과는 있나

발상이 참신한 것과 실제로 듣는 것은 다른 문제죠. 근거를 보겠습니다.

39편의 무작위 대조시험, 1,821명의 환자 데이터를 묶은 메타분석에서 ACT는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나은 효과를 보였습니다(효과크기 g=0.57). 불안, 우울, 중독, 그리고 만성통증 같은 신체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요1. 이후 20개의 메타분석, 1만 2천여 명을 아우른 종합 리뷰에서도 ACT는 여러 영역에서 효과적인 근거 기반 치료로 평가됐습니다2.

그럼 기존의 강력한 치료인 인지행동치료와 견주면 어떨까요. 두 치료를 직접 맞붙인 연구가 답을 줍니다.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ACT와 CBT를 무작위로 배정해 비교한 시험에서, 치료 후 관해율은 각각 75%와 80%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습니다3. 즉 ACT는 검증된 표준 치료에 견줄 만한 효과를 보인다는 뜻입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한다기보다, 사람에 따라 더 잘 맞는 접근이 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누구에게 특히 맞을까

ACT는 우울과 불안 전반에 두루 쓰이지만, 특히 빛을 발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만성통증입니다. 통증을 완전히 없앨 수 없을 때, 통증과 싸우기를 멈추고 그럼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ACT의 접근이 잘 들어맞거든요. 마찬가지로, 증상을 없애려는 노력 자체가 오히려 삶을 좁혀온 사람, 생각을 반박하는 방식이 잘 안 맞았던 사람에게도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에 기반한 치료와 뿌리를 공유하지만, 가치와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물론 ACT도 마법은 아닙니다. 생각을 흘려보내고 가치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고,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그 방향이 흥미로운 건, 우리가 평생 해온 '괴로움과 싸우기'라는 전략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과의 씨름을 멈추고, 대신 오늘 내가 소중히 여기는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 어쩌면 나아진다는 건,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파도 위에서 배를 젓는 법을 배우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 ACT의 효능 메타분석, 39개 무작위 시험 (A-Tjak 등, Psychother Psychosom 2015): PubMed
  • ACT 대 CBT 우울증 직접 비교 무작위 시험 (A-Tjak 등, Psychother Psychosom 2018): PubMed
  • ACT의 경험적 근거, 20개 메타분석 종합 리뷰 (Gloster 등, J Contextual Behav Sci 2020): ScienceDirect

참고문헌

  1. A-Tjak 등, 2015
  2. Gloster 등, 2020
  3. A-Tjak 등,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