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와 항정신병약, 기분조절제에 대해서는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걱정할 만한 것은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그리고 일부 오래된 약의 항콜린 작용 두 가지이고, 그마저도 "치매를 일으킨다"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아닌지 갈라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벤조디아제핀은 관찰 연구에서 연관이 보고됐지만, 인과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자낙스나 디아제팜 같은 벤조디아제핀을 오래 쓴 사람에서 치매 진단이 더 많았다는 연구가 여럿 있고, 반대로 큰 규모로 오래 추적했더니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엇갈리는 이유는 방향이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치매가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불안과 불면이 먼저 오는데, 그때 처방받은 안정제가 나중에 "치매 전에 먹었던 약"으로 잡힙니다. 약이 치매를 만든 것인지, 치매의 전조가 약을 부른 것인지 관찰 연구로는 가릴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벤조디아제핀은 먹는 동안 기억력과 반응 속도를 떨어뜨리고, 고령자에서 낙상과 섬망을 늘립니다. 치매 여부와 별개로 이것만으로도 고령자에게 오래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졸피뎀도 같은 이유로 조심합니다.
항콜린 작용이 강한 약은 따로 봐야 합니다. 오래된 삼환계 항우울제, 일부 항히스타민제, 일부 방광약과 파킨슨약처럼 입이 마르고 변비가 오는 약들은 뇌의 기억 회로에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약을 오래, 많이 쓴 고령자에서 치매 위험이 올라간다는 대규모 자료가 있고, 이쪽은 벤조디아제핀보다 근거의 무게가 조금 더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쓰는 항우울제는 이 작용이 거의 없는 쪽으로 옮겨 왔습니다. 정신과 약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은 따로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항우울제는 치매를 일으킨다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반대 방향의 자료가 있습니다. 우울증 자체가 치매의 위험 요인입니다. 중년 이후 치료하지 않은 우울증이 오래 이어지면 나중에 치매 위험이 올라간다는 것이 여러 추적 연구에서 확인돼 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그 위험을 줄이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렉사프로나 졸로푸트 같은 약을 오래 먹어서 치매가 온다는 자료는 없습니다. 항정신병약과 기분조절제도 마찬가지로, 장기 복용이 치매를 만든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치료하지 않은 조현병과 양극성장애에서 인지 기능이 더 나빠진다는 자료는 있습니다.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은데"라는 느낌에 대해. 약을 오래 드시는 분이 건망증을 호소할 때, 진료실에서 먼저 보는 것은 약이 아니라 우울, 불안, 수면 부족, 나이입니다. 이것들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이 대부분의 약보다 큽니다. 건망증과 치매를 어떻게 가르는지는 치매 글에 적어 두었습니다. 걱정이 되신다면 간단한 인지 검사로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는 분이 많습니다.
정리하면, 오래 먹어서 치매가 걱정되는 약은 안정제·수면제와 항콜린성 약이고, 그것도 "안 쓸 수 있으면 안 쓰는 것이 낫다"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항우울제를 오래 먹는 것을 치매 걱정 때문에 그만둘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