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계획하거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정신과 약을 먹고 있던 사람은 큰 갈림길에 섭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은 대개 하나로 모입니다. "그건 무조건 끊어야지." 좋은 뜻에서 나온 조언이지만, 이 '무조건'이라는 말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약과 임신은 정신의학에서 가장 까다로운 결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이것이 '위험한 약'과 '안전한 중단'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무거운 주제를, 겁주기나 안심시키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근거로 짚어보겠습니다. 다만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실제 결정은 반드시 주치의와 함께 내려야 하며, 이 글은 그 대화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큰 오해, 끊는 게 늘 안전하다
먼저 정면으로 짚어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약을 끊으면 그것으로 위험이 사라진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병 자체는 그대로 남습니다.
우울증 병력이 있는 임신부들을 추적한 연구를 보면, 임신 중 약을 유지한 사람은 26%가 재발한 반면 약을 중단한 사람은 68%가 재발했습니다1. 임신이 우울증을 막아주리라는 통념과 달리, 임신은 병을 지켜주지 않았고 약을 끊은 쪽에서 재발이 훨씬 잦았습니다. 그리고 치료받지 못한 우울은 그 자체로 산모의 자기돌봄을 무너뜨리고, 조산이나 저체중 출산 같은 문제와 연관되며, 출산 후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산모의 안전까지 위협하고요.
핵심. 이 결정은 '약의 위험 대 안전한 중단'이 아니라 '약의 위험 대 치료하지 않은 병의 위험' 사이의 저울질입니다. 자의로 갑자기 끊는 것 역시 하나의 위험한 선택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흔히 쓰는 항우울제는 생각보다 근거가 쌓여 있다
그렇다면 약의 위험은 실제로 얼마나 클까요. 가장 널리 쓰이는 항우울제인 SSRI는, 다행히 임신과 관련해 가장 많이 연구된 약에 속합니다.
100만 명 규모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 임신 초기의 항우울제 사용과 태아 심장 기형 사이의 연관을 따져봤습니다. 언뜻 위험이 조금 높아 보였지만, 우울증이라는 배경 요인 등을 함께 보정하자 그 연관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보정 후 상대위험도 1.06)2. 연구진은 임신 초기 항우울제 사용이 심장 기형 위험을 실질적으로 높이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물론 어떤 약도 '위험 제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흔히 쓰는 SSRI가 흔히 상상하는 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근거가 쌓여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정말 조심해야 할 약도 있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항우울제는 대체로 괜찮다'는 이야기가 '모든 정신과 약이 임신에 안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강하게 피해야 할 약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분조절제 발프로에이트입니다. 이 약은 임신 초기에 신경관 결손 같은 주요 기형의 위험을 뚜렷하게 높입니다. 게다가 태아기에 이 약에 노출된 아이들은 이후 지능지수가 유의하게 낮았습니다3. 그래서 발프로에이트는 임신부는 물론,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도 대체할 약이 정말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처럼 약은 종류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천차만별이라, '정신과 약'이라고 뭉뚱그려 판단할 수 없습니다.
| 흔한 오해 | 실제 |
|---|---|
| 임신하면 모든 약을 끊어야 안전하다 | 중단에 따른 재발과 무치료의 위험이 따로 있다 |
| 정신과 약은 다 똑같이 위험하다 | 약마다 위험의 크기가 크게 다르다 |
| 지금 당장 혼자 끊는 게 최선이다 | 계획된 상의와 조정이 훨씬 안전하다 |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임신과 정신과 약의 문제는 정답이 하나로 정해진 문제가 아니라, 사람마다 병의 심각도와 재발 이력, 약의 종류를 저울질해 개별적으로 푸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공통으로 짚을 원칙은 있습니다.
- 혼자 갑자기 끊지 않기.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단이 필요하더라도 방식과 시점을 전문가와 정해야 합니다.
- 가능하면 임신 전에 미리 상의하기. 계획 임신이라면, 임신 전에 근거가 더 쌓인 약으로 조정하거나 최소 유효 용량으로 줄이는 등 미리 손볼 여지가 많습니다.
- 약의 종류를 함께 검토하기. 발프로에이트처럼 피해야 할 약이라면 대안을 찾고, 꼭 필요한 치료라면 위험이 낮은 쪽을 고릅니다.
- 무치료를 '안전한 기본값'으로 여기지 않기. 병을 방치하는 것 역시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위험이라는 사실을 결정의 한 축에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임신하면 정신과 약은 무조건 끊어야 한다'는 말은, 선의에서 나왔을지언정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정이나 중단이 답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산모와 아기 모두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 갈림길에서 필요한 건 '무조건'이라는 단호함이 아니라, 나의 상황을 아는 의사와 함께 두 위험을 저울에 올려보는 신중함입니다. 그리고 그 저울질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대개 지금입니다.
참고 자료
- 임신 중 항우울제 유지와 중단에 따른 우울증 재발 (Cohen 등, JAMA 2006): PubMed
- 임신 초기 항우울제와 태아 심장 기형 위험, 대규모 코호트 (Huybrechts 등, N Engl J Med 2014): PubMed
- 태아기 항경련제 노출과 3세 인지기능, NEAD 연구 (Meador 등, N Engl J Med 2009): PubM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