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우울증에 걸리면 약을 처방받고, 불안하면 신경안정제를 먹고, 조현병을 약으로 관리합니다. 너무 당연해서 원래 그랬던 것 같지만 — 불과 80년 전만 해도, 정신과에는 '약'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정신과 약의 역사는 치밀한 설계보다 어처구니없는 우연으로 시작됩니다. 결핵약을 먹은 환자가 갑자기 들떴고, 수술 마취를 돕던 약이 조현병에 들었고, 기니피그를 진정시킨 물질이 조증 치료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우연의 시대를 지나 세 번의 결정적 변곡점 — 프로작, 아빌리파이, 스프라바토 — 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 글은 그 70여 년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길지만, 지금 당신이 손에 쥔 그 알약 한 알에 담긴 드라마를 알고 나면, 약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과 교양을 위한 글입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약이 없던 시대 — 1950년 이전
먼저 '약 이전'이 얼마나 막막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20세기 전반, 심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의학이 내밀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형 수용소에 격리하는 것, 인슐린을 대량 주사해 일부러 혼수에 빠뜨리는 것(인슐린 혼수요법), 그리고 — 지금 들으면 오싹한 — 전두엽을 잘라내는 수술(로보토미) 이 '치료'로 통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사실 하나. 이 로보토미를 창시한 포르투갈 의사 에가스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뇌의 일부를 끊어 흥분을 가라앉힌다는 발상이 당대엔 혁신으로 여겨진 것이죠. (심지어 모니스는 통풍으로 손을 제대로 못 써서, 정작 수술은 다른 외과의가 집도했다고 전해집니다.) 뇌수술로 노벨상을 주던 그 시대가 — 약이 등장하면서 불과 몇 년 만에 저물기 시작합니다.
우연이 만든 혁명 — 1950년대
정신약리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사실상 1950년대의 몇 년 사이에 우연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수술실에서 온 최초의 항정신병약 — 클로르프로마진
1950년, 프랑스 제약사의 화학자가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물질을 합성합니다. 원래 목적은 정신질환이 아니었어요. 외과의사 앙리 라보리가 이 약을 수술 환자의 마취를 돕는 용도로 써보다가, 환자들이 수술 전인데도 묘하게 차분하고 무심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관찰이 정신과로 넘어옵니다. 1952년, 파리의 정신과 의사 장 들레이와 피에르 드니케르가 조증·조현병 환자에게 이 약을 써보니, 흥분과 망상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항정신병약이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 정신과가 아니라 수술실에서 말이죠1.
파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 약이 퍼지면서 수용소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고("탈수용소화"에는 정책·사회적 요인도 컸으니 약 하나의 공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질환도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 는 발상 자체가 처음으로 증명됐습니다.
기니피그가 알려준 조증 치료제 — 리튬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 정신과 의사 존 케이드가 엉뚱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증 환자의 소변에 무슨 독성 물질이 있을 거라 가정하고, 그걸 기니피그에 주사해본 겁니다. 그런데 용해제로 쓴 리튬 성분이 오히려 기니피그를 얌전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1949년 리튬을 조증 치료에 써봅니다2.
케이드는 안전성을 확인하려고 리튬을 자기 몸에 먼저 복용해보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기니피그가 온순해졌다"는 대목은, 실은 리튬 독성으로 무기력해진 것이라는 재해석도 있어 이야기로만 즐기시길.) 오늘날까지도 리튬은 양극성장애 치료의 표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결핵약이 우울증약으로 — 이프로니아지드
1952년, 결핵 병동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결핵약(이소니아지드 계열)을 먹은 환자들이 병세와 무관하게 부적절할 만큼 들뜨고 기분이 좋아진 것입니다. "결핵 병동에서 환자들이 춤을 췄다"는 극적인 일화는 다소 각색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기분이 확 밝아진 현상 자체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 이 '부작용'을 우울증에 써보면? 그렇게 이프로니아지드가 최초의 MAO 억제제 계열 항우울제가 됩니다3. (간 독성 문제로 오래가진 못했지만요.)
항정신병약으로 쓰려다 실패해서 태어난 항우울제 — 이미프라민
클로르프로마진이 성공하자, 제약사들은 비슷한 물질을 잔뜩 만들어 조현병에 시험했습니다. 그중 하나였던 이미프라민은 정신병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실패작이었죠. 그런데 이 약을 쓴 우울한 환자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스위스 의사 롤란트 쿤이 알아챕니다(1957년 보고). 이렇게 최초의 삼환계 항우울제가, 역시 우연히 탄생했습니다4. 오늘날 쓰이는 아미트리프틸린 같은 삼환계 약들의 맏형 격입니다.
선반에 방치됐다 살아난 신경안정제 — 벤조디아제핀
불안을 다스리는 약도 이 시기에 나옵니다. 로슈사의 화학자 레오 스턴바흐가 만든 물질 하나가 별 쓸모없어 보여 한동안 방치됐다가, 우연히 다시 시험되면서 강력한 항불안·진정 효과가 발견됩니다(이 "선반에 뒀다 재발견됐다"는 대목은 널리 전해지는 일화입니다). 그렇게 리브리움(1960), 이어 그 개량판인 발륨(1963) 이 나오며 벤조디아제핀 시대가 열렸습니다5. 오늘날의 알프라졸람·클로나제팜 같은 약들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이론은 '나중에' 왔습니다
여기서 정신약리학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이 드러납니다. 약이 먼저 나오고, 그게 왜 듣는지에 대한 이론은 한참 뒤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1950년대 내내 약들은 우연히 쏟아졌고, 1965년에야 조지프 실드크라우트가 이 약들이 공통적으로 뇌의 모노아민(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물질)을 건드린다는 데 착안해 "우울증은 모노아민이 부족한 상태" 라는 가설을 정리합니다6. 즉 약을 역설계해서 뇌 이론을 만든 셈이죠. 이 '모노아민 가설'은 이후 60년 가까이 정신과 약 개발의 지도가 됩니다 — 스프라바토가 나타나 그 지도를 다시 그리기 전까지요.
변곡점 ① 프로작(1987) — 우울증을 온 세상으로
우연의 시대가 저물고, 첫 번째 진짜 변곡점이 옵니다.
1970년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이전과 다른 시도를 합니다. 우연에 기대지 말고, 모노아민 가설이 지목한 세로토닌만 콕 집어 겨냥한 약을 설계하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1972년에 합성된 물질이 플루옥세틴, 상품명 프로작입니다. 최초의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이고요. 오랜 개발 끝에 1987년 12월 FDA 승인, 1988년 시판됩니다7.
그런데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프로작이 변곡점이 된 것은 "기존 약보다 효과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우울증을 낫게 하는 효과만 보면, 프로작은 앞서 나온 삼환계 항우울제와 엇비슷했습니다.
프로작의 혁명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훨씬 안전하고 견디기 편했다는 것입니다. 삼환계 약은 과량 복용 시 위험했고 입마름·변비·졸림 같은 부작용이 컸는데, 프로작은 그런 부담이 훨씬 적었습니다. 그 결과 —
-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1차 진료의(동네 의원)도 편하게 처방할 수 있게 됐고,
- 그러자 우울증 치료가 소수의 중증 환자에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대중화됐으며,
-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말의 낙인이 크게 옅어졌습니다.
1993년 정신과 의사 피터 크레이머의 책 『프로작에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Prozac)』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이 약은 아예 시대의 문화 현상이 됩니다. 이후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렉사프로·졸로프트(설트랄린)·팍실(파록세틴) 같은 '미투 SSRI'가 줄줄이 쏟아졌습니다.
핵심 — 프로작의 진짜 혁명은 '더 센 약'이 아니라 '더 안전한 약' 이었다는 점입니다. 효과가 극적으로 세진 게 아니라, 안전해진 덕분에 우울증 치료가 병원 담장을 넘어 온 세상으로 퍼진 것 — 그것이 첫 번째 변곡점의 의미입니다.
물론 그늘도 있습니다. 프로작의 성공은 "우울증은 세로토닌 부족(화학적 불균형) 때문" 이라는 단순한 설명을 대중에 각인시켰는데, 이 설명은 이후 지나치게 단순하고 과장됐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긴 글감이라, 다음 기회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막간 — '더 세게'에서 '더 정교하게'
프로작이 항우울제를 바꾸는 동안, 항정신병약 쪽에서도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주인공은 클로자핀입니다. 1958년에 이미 합성돼 있었지만, 1975년 핀란드에서 이 약을 쓴 환자들이 백혈구가 급감하는 무과립구증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시장에서 밀려났습니다. 사실상 사장된 약이었죠.
그런데 1988년, 정신과 의사 존 케인 등이 놀라운 사실을 밝혀냅니다. 다른 어떤 약에도 반응하지 않던 치료저항성 조현병 환자들에게, 클로자핀만은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으로 클로자핀은 엄격한 혈액검사를 조건으로 1989년 극적으로 부활합니다8.
클로자핀의 부활은 새로운 흐름을 열었습니다. 손 떨림·근육 굳음 같은 운동 부작용이 적은 '비정형(2세대) 항정신병약'의 시대입니다. 리스페리돈(1993), 올란자핀(1996), 쿠에티아핀 등이 이어졌죠. 다만 이 약들은 운동 부작용을 던 대신 체중 증가·대사 문제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숙제를 겨냥해, 두 번째 변곡점이 등장합니다.
변곡점 ② 아빌리파이(2002) — 더 세게가 아니라 더 영리하게
그때까지 항정신병약의 원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됐습니다. "과한 도파민을 막는다." 도파민 신호를 세게 차단할수록 효과는 나지만, 그만큼 운동 부작용과 무기력도 따라왔습니다. '세게 막기'와 '부작용'이 한 몸이었던 겁니다.
2002년, 일본 제약사 오츠카가 내놓은 아리피프라졸(상품명 아빌리파이)은 이 공식을 비틀었습니다. 이 약은 도파민을 무조건 막는 게 아니라 — 도파민이 부족한 곳에서는 살짝 북돋고, 지나친 곳에서는 눌러주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도파민 시스템 안정제(도파민 부분작용제)' 입니다9.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기존 약이 난방을 무조건 꺼버리는 스위치였다면, 아빌리파이는 너무 추우면 데우고 너무 더우면 식히는 온도조절기에 가깝습니다. 그 덕분에 운동 부작용과 특유의 무기력, 프로락틴 상승 같은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아빌리파이가 변곡점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 첫째, 기전의 혁신. "더 세게 막자"가 아니라 "균형을 잡자"는 발상 자체가 새로웠습니다.
- 둘째, 경계를 허물었다. 아빌리파이는 조현병뿐 아니라 2007년 우울증의 '부가요법' 으로도 허가받습니다. 항우울제가 잘 안 들을 때 소량 얹어 쓰는 용도죠. 항정신병약이 거대한 우울증 시장으로 넘어온 것이고, 이때부터 '항우울제 vs 항정신병약'이라는 칸막이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 셋째, 규모. 아빌리파이는 한때 전 세계 의약품 매출 1위권(2013년경 연 70억 달러 안팎)에 오른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됩니다.
정리하면, 프로작이 '안전' 으로 문을 열었다면, 아빌리파이는 '정교함' 으로 다음 문을 열었습니다. 더 센 약이 아니라 더 영리한 약 — 그것이 두 번째 변곡점입니다.
변곡점 ③ 스프라바토(2019) — 60년 만에 바뀐 표적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작도, 그 뒤의 수많은 항우울제도 — 전부 1965년의 그 지도, 즉 '모노아민(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같은 동네 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60년 가까이, 항우울제 개발은 세로토닌 근처를 맴돌았습니다.
2019년, 그 지도가 처음으로 바뀝니다.
에스케타민(상품명 스프라바토)은 세로토닌이 아니라 글루타메이트라는, 완전히 다른 신경전달물질 계통(NMDA 수용체)을 건드립니다. 이 성분의 뿌리는 1962년에 합성된 마취제 케타민이고요. 1950년대의 우연한 발견들 이후 처음으로, 모노아민이 아닌 표적을 겨냥한 항우울제가 나온 것입니다10.
표적만 바뀐 게 아닙니다. 속도도 달랐습니다. 기존 항우울제가 효과를 내는 데 2~4주가 걸리는 반면, 스프라바토는 몇 시간에서 며칠 만에 반응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항우울제는 원래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오래된 상식마저 흔든 것이죠. (스프라바토의 자세한 작동 원리·투여법·부작용은 따로 정리한 글에서 다뤘습니다.)
핵심 — 스프라바토의 의미는 '더 좋은 우울증 약'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60년간 세로토닌만 바라보던 정신의학이, 처음으로 '다른 곳을 봐도 된다'는 걸 증명한 것 — 그래서 세 번째 변곡점입니다. 문 하나가 아니라, 그 뒤의 방 전체를 연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초기 연구의 큰 기대 효과는 대규모 임상에서 다소 줄어들었고, 비용·투여 절차·부작용이라는 현실적 조건도 뚜렷합니다. '혁명'과 '과열'은 늘 함께 오니까요. 다만 표적을 바꿨다는 그 상징성만큼은 분명합니다.
스프라바토가 연 문 — 2020년대의 르네상스
스프라바토가 "세로토닌 밖에도 길이 있다"를 증명하자, 그 뒤로 수십 년간 잠잠하던 새 기전의 약들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 주라놀론(2023) — 뇌의 진정 신호(GABA)를 조절하는 신경스테로이드 계열로, 먹는 산후우울증 약으로 허가됐습니다. 출산 후 급성 우울에 빠르게 작용하는, 결이 다른 약입니다.
- 코벤파이(2024) — 도파민을 차단하는 대신 무스카린이라는 다른 수용체를 겨냥한 조현병 약입니다. 도파민 차단이라는 70년 묵은 공식에서 벗어난 첫 조현병 치료제로, 정신의학계에서 최근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힙니다.
- 여기에 사일로시빈·MDMA 같은 환각 물질을 치료에 쓰려는 임상시험들까지 진행되며, 정신약리학은 지금 1950년대 이후 가장 활발한 '기전의 르네상스' 를 맞고 있습니다.
세 변곡점이 말해주는 것
70년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우연의 시대(1950년대) → 안전의 혁명(프로작, 1987) → 정교함의 혁명(아빌리파이, 2002) → 표적의 혁명(스프라바토, 2019) → 그리고 지금의 르네상스.
재미있는 건, 이 세 변곡점이 각각 '효과가 훨씬 세져서' 위대해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로작은 더 안전해서, 아빌리파이는 더 영리해서, 스프라바토는 더 새로운 곳을 봐서 역사를 바꿨습니다. 정신과 약의 발전은 '파괴력'이 아니라 '접근하는 방식'의 발전에 가까웠던 셈이죠.
동시에 겸손도 필요합니다. 아직 정신질환을 '완치'시키는 약은 없습니다. 세 변곡점 모두 등장할 때는 과장된 기대(그리고 거품)를 동반했고, 뇌는 매번 우리 예상보다 복잡했습니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 뇌수술로 노벨상을 주던 시대에서, 코로 뿌려 몇 시간 만에 우울을 더는 시대까지. 우리는 확실히, 조금씩, 앞으로 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정말 초기 정신과 약들이 다 '우연'이었나요?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클로르프로마진(수술 마취), 이프로니아지드(결핵약), 이미프라민(실패한 항정신병약), 리튬(기니피그 실험), 벤조디아제핀(방치됐던 물질) — 대부분 다른 걸 하다가 발견됐습니다. '세로토닌을 겨냥해 설계한' 프로작조차, 그 세로토닌 이론 자체가 우연히 나온 약들을 역설계한 결과였습니다.
Q. 그럼 요즘 약이 옛날 약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가요? 의외로 '효과' 자체는 극적으로 세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전성과 견디기 편함(내약성)이 크게 좋아졌습니다. 옛날 약도 잘 들었지만 부작용이 무거워 쓰기 어려웠다면, 요즘 약은 비슷한 효과를 훨씬 편하게 낸다고 이해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그래서 "옛날 약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오해예요 — 리튬처럼 70년 넘게 최전선을 지키는 약도 있습니다.
Q. 다음 변곡점은 뭘까요? 아무도 확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스프라바토 이후 글루타메이트·GABA·무스카린·환각제 등 '세로토닌 바깥'의 후보들이 동시에 달리고 있어서, 향후 10년이 지난 30년보다 더 다채로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중 무엇이 진짜 변곡점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압니다.
💬 전문의 한마디
저는 이 역사를 좋아합니다. 어설프고, 우연투성이고, 그래서 인간적이거든요. 세상을 바꾼 약들이 대단한 천재의 설계도가 아니라 "어라, 이 환자 왜 기분이 좋아졌지?" 하는 작은 관찰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저는 오히려 위안이 됩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선생님, 이 약 먹으면 완전히 낫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신과 약은 아직 '완치의 버튼'이 아닙니다. 70년의 역사가 만든 건 만능 치료제가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정교하고, 더 여러 갈래인 선택지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약 하나보다, 당신에게 맞을 때까지 함께 바꿔볼 수 있는 여러 개의 좋은 약이 더 든든하니까요. 그리고 이 역사가 증명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 막다른 길처럼 보이던 순간마다, 늘 뜻밖의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약도 잘 안 듣는 것 같아 지쳐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변곡점은, 어쩌면 당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신과 약의 역사는 우연에서 시작해 설계로, 파괴력에서 정교함으로, 하나의 표적에서 여러 갈래로 나아온 여정이었습니다. 프로작이 우울증을 온 세상에 꺼내놓았고, 아빌리파이가 더 영리한 방식을 보여줬으며, 스프라바토가 60년 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약들이 실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먹고 있는 약 한 알에도, 이 긴 이야기의 한 조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실이, 약을 조금 덜 두렵고 조금 더 든든하게 느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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