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계열의 약이라도 성격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앞서 다룬 이팩사(벤라팍신)와 오늘의 익셀은 둘 다 SNRI(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지만, 뇌에서 하는 일의 '무게중심'이 다릅니다.

익셀(성분명 밀나시프란, Milnacipran) 은 SNRI 중에서도 가장 노르에피네프린 쪽으로 기운 약입니다. 형제 약들이 세로토닌부터 챙기는 것과 달리, 익셀은 처음부터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을 거의 반반으로 끌어올립니다. 여기에 더해 약물 상호작용이 가장 적고, 흥미롭게도 미국에서는 우울증이 아니라 '섬유근육통(온몸이 아픈 만성 통증병)' 약으로 허가돼 있는, 여러모로 특이한 약입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상품명: 익셀(Ixel) — 프랑스 피에르파브르가 개발, 국내는 부광약품이 판매
  • 성분명: 밀나시프란(Milnacipran)
  • 분류: SNRI 계열 항우울제 — 단, 가장 균형 잡힌(노르에피네프린 쪽) SNRI
  • 국내 허가 용도: 우울증
  • 복용법: 보통 하루 100mg을 아침·저녁 두 번에 나눠 복용(반감기가 짧아 하루 두 번)
  • 핵심 특징 1: SNRI 중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균형이 거의 1:1 — 형제 약들은 세로토닌 우세
  • 핵심 특징 2: 약물 상호작용이 가장 적음 — 간을 거의 거치지 않고 소변으로 배출
  • 핵심 특징 3: 미국에선 우울증 약이 아님 — 섬유근육통에만 허가(브랜드명 사벨라)
  • 주의점: 노르에피네프린 계열 부작용(땀·두근거림) + 드물게 소변이 시원찮은 배뇨 증상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어떤 약인가 — 'SNRI 삼형제'에서의 위치

SNRI라는 계열에는 대표 선수가 셋 있습니다 — 이팩사(벤라팍신), 심발타(둘록세틴), 그리고 익셀(밀나시프란) 입니다. 이름은 다 SNRI지만, 세 약이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중 어느 쪽에 더 힘을 쓰는지가 다릅니다.

세 SNRI의 세로토닌 대 노르에피네프린 균형 — 벤라팍신은 세로토닌 쪽으로 크게 치우침, 둘록세틴은 세로토닌 쪽, 밀나시프란은 거의 중앙(균형)
세 SNRI의 세로토닌 대 노르에피네프린 균형 — 벤라팍신은 세로토닌 쪽으로 크게 치우침, 둘록세틴은 세로토닌 쪽, 밀나시프란은 거의 중앙(균형)
  • 이팩사(벤라팍신): 세로토닌에 대한 힘이 노르에피네프린보다 약 30배 강합니다. 세로토닌 쪽으로 크게 치우친 약이라, 용량을 많이 올려야 노르에피네프린 효과가 나옵니다.
  • 심발타(둘록세틴): 세로토닌 쪽으로 약 10배 기울어 있습니다.
  • 익셀(밀나시프란): 거의 1:1로 균형이 잡혀 있고, 일부 연구에서는 오히려 노르에피네프린 쪽으로 살짝 기운다고 봅니다12.

이 그래프가 뜻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SNRI라고 다 같은 SNRI가 아니라, 익셀은 그중 가장 '노르에피네프린스러운' 약입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각성·의욕·집중·통증 조절과 관련되므로, 익셀은 무기력·피로·통증이 두드러지는 상태에서 특히 기대를 받습니다. 대신 노르에피네프린 계열 특유의 부작용(뒤에서 볼 땀·두근거림·배뇨 증상)도 상대적으로 잘 나타납니다.

특이한 이력 — 미국에서는 '우울증 약'이 아닙니다

이 약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익셀(밀나시프란)은 유럽·한국·일본에서는 항우울제입니다. 프랑스에서 1996년 우울증 치료제로 처음 나왔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우울증 약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약이 우울증 약으로 허가돼 있지 않습니다. 대신 2009년 '섬유근육통' 이라는,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피로한 만성 통증병에 허가받았습니다(미국 브랜드명은 사벨라/Savella). 제조사가 미국에서는 아예 우울증 허가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3.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밀나시프란처럼 노르에피네프린을 함께 끌어올리는 약은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그 통증 쪽 효과에 초점을 맞춰 개발·허가가 진행된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임상시험에서 밀나시프란은 섬유근육통 환자의 통증을 위약보다 뚜렷하게 줄였습니다(30% 이상 통증 감소가 밀나시프란 약 40% 대 위약 약 30%, Cochrane 리뷰 2015).

정리하면 — 같은 약이 한쪽 나라에서는 '우울증 약', 다른 나라에서는 '통증 약'입니다. 이건 밀나시프란이 기분과 통증 양쪽에 작용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을 건드리는 약이라는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헷갈리기 쉬운 점: 미국에는 레보밀나시프란(브랜드명 페트지마) 이라는 비슷한 이름의 별도 항우울제가 있습니다. 이건 밀나시프란의 '한쪽 거울상' 성분만 뽑아 만든 다른 약으로, 익셀과는 구별됩니다.

우울증에는 얼마나 듣나

밀나시프란을 다른 항우울제와 비교한 대표 연구는 코크란 리뷰(16개 임상시험, 2,277명)입니다4. 결론을 정직하게 옮기면 이렇습니다.

  • 효과 면에서 SSRI나 삼환계(옛 항우울제)보다 뚜렷이 낫다고 볼 근거는 없었습니다.'비슷하게 듣는다' 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 대신 옛 삼환계 항우울제보다는 부작용으로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중단 위험 약 0.55배). 졸림·입마름·변비 같은 항콜린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21개 항우울제를 비교한 대규모 분석5에서도 밀나시프란은 포함되긴 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상위 그룹에도, 가장 약한 그룹에도 들지 않은 '중간' 위치였습니다.

그러니 익셀은 "가장 센 항우울제"라기보다, 특정한 강점(노르에피네프린·통증·적은 상호작용) 때문에 선택되는 약으로 이해하는 편이 맞습니다.

이 약의 진짜 강점 — 약물 상호작용이 가장 적다

여기가 임상에서 익셀이 빛나는 지점입니다.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간에서 특정 효소(CYP450)로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약과 서로 간섭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여러 약을 함께 먹는 분에게는 늘 상호작용을 따져야 합니다.

밀나시프란은 다릅니다. 이 약은 간에서 거의 대사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소변으로 배출됩니다6. 그래서 다른 약과 부딪힐 여지가 항우울제 중 가장 적은 편입니다.

핵심 — 밀나시프란의 최대 강점은 "약을 여러 개 먹어도 서로 간섭이 적다" 는 점입니다. 심장약·혈압약 등 만성질환 약을 여러 개 복용하는 분, 여러 약을 병용해야 하는 분에게 특히 편리한 항우울제입니다. 단,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약이라 콩팥 기능이 많이 떨어진 분은 용량을 줄여야 합니다.

부작용 — 노르에피네프린 쪽 약의 특징

익셀의 부작용은 노르에피네프린을 끌어올리는 약'답게' 나타납니다.

  • 메스꺼움: SNRI 공통으로 가장 흔하고, 대개 시작 초기에 심했다가 가라앉습니다.
  • 땀·화끈거림·두근거림: 노르에피네프린 효과로 땀이 늘고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습니다. 맥박이 조금 빨라지기도 합니다.
  • 소변이 시원찮은 증상(배뇨 곤란): 이건 익셀에서 특히 기억해 둘 부작용입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이 방광·요도 근육을 조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인데, 소변 줄기가 약해지거나 보기 힘든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전립선이 커진 중년 이후 남성은 이 증상이 생기기 쉬우니, 해당되면 미리 알려주세요3.
  • 혈압: 노르에피네프린 계열이라 혈압이 오를 수 있지만, 벤라팍신만큼 용량에 따라 뚜렷하게 오르지는 않는 편입니다1.

다른 SNRI와 한눈에 비교

세로토닌 : 노르에피네프린대사·상호작용특징
이팩사(벤라팍신)세로토닌 우세(약 30:1)간 대사(CYP), 중간효과 강한 편, 중단 증상 큼
심발타(둘록세틴)세로토닌 우세(약 10:1)간 대사(CYP)통증(신경통·근골격통)에 폭넓게 허가
익셀(밀나시프란)균형(≈1:1), NE 쪽간 거의 안 거침(소변 배출)상호작용 적음, 통증·피로, 하루 두 번

세 약 모두 SNRI지만, 벤라팍신은 세로토닌에서 출발해 용량을 올려야 노르에피네프린이 붙고, 익셀은 처음부터 노르에피네프린 비중이 큰 약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증상(무기력·통증이 두드러지는지)과 함께 먹는 약(상호작용 부담)에 따라 갈립니다.

임신·수유 중에는?

자료가 제한적입니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는 것 자체도 위험이므로 무조건 끊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 임신 계획이 있거나 임신·수유 중이라면 유지·변경·중단을 반드시 사전에 상의하세요.

함께 조심해야 할 것 — 상호작용

상호작용이 적은 약이지만, '세로토닌 과잉'만은 예외입니다.

  • 다른 세로토닌 계열 약과 겹치면(세로토닌 증후군): 다른 항우울제, 일부 진통제(트라마돌), 편두통약(트립탄) 등과 겹치면 몸이 떨리고 열이 나는 위험한 상태가 올 수 있습니다. 여러 약을 함께 쓸 때는 알리세요. (옛 계열인 MAO 억제제와는 병용 금기지만, 요즘 국내에서는 거의 쓰지 않아 대부분 해당 없습니다.)
  • 술: 어지럼·졸림이 겹칩니다.

복용법과 끊을 때

  • 하루 두 번: 반감기가 짧아 보통 아침·저녁으로 나눠 먹습니다. 저녁 늦게 먹으면 잠이 얕아질 수 있어, 너무 늦은 시간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 중단: 다른 SNRI처럼 갑자기 끊으면 어지럼·메스꺼움 같은 중단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반감기가 짧은 약이니 천천히 줄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벤라팍신만큼 중단 증상이 악명 높지는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왜 하루 두 번이나 먹어야 하나요? 귀찮은데요. 익셀은 몸에서 빠르게 빠져나가는(반감기가 짧은) 약이라, 효과를 하루 종일 유지하려면 나눠 먹는 게 유리합니다. 한 번에 몰아 먹기보다 아침·저녁으로 챙기면 부작용도 덜합니다.

Q. 저는 다른 약을 여러 개 먹는데, 항우울제를 더해도 될까요? 그럴 때 오히려 익셀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간을 거의 거치지 않아 다른 약과 부딪힐 여지가 적기 때문입니다. 다만 콩팥 기능이 나쁘면 용량 조절이 필요하니 상의하세요.

Q. 미국에선 섬유근육통 약이라던데, 저는 우울증인데 먹어도 되나요? 네. 나라마다 허가 용도가 다를 뿐, 같은 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 치료제로 정식 허가돼 있습니다. 오히려 통증에도 작용하는 약이라, 우울과 함께 몸의 통증·피로가 있는 분께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Q. 소변이 좀 시원찮은 것 같아요. 익셀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입니다. 특히 전립선이 큰 남성에게 잘 생깁니다. 참지 말고 알려주시면 용량 조정이나 약 변경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Q. 페트지마(레보밀나시프란)랑 같은 약인가요? 비슷하지만 다른 약입니다. 페트지마는 밀나시프란의 한쪽 성분만 뽑아 만든 약으로 미국에서 항우울제로 쓰이고, 국내의 익셀과는 구별됩니다.

💬 전문의 한마디

익셀은 제게 "자리를 잘 골라 쓰면 아주 요긴한 약" 입니다. 화려하게 센 약은 아니지만, 다른 항우울제에는 없는 뚜렷한 개성이 있거든요.

제가 이 약을 특히 떠올리는 상황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여러 약을 드시는 분입니다. 심장약, 혈압약, 다른 내과 약을 한 움큼 드시는 분께 항우울제를 더할 때, 저는 상호작용을 가장 덜 걱정해도 되는 익셀을 자주 고려합니다. 간을 거의 거치지 않고 소변으로 나가는 이 약의 특성이 그럴 때 큰 장점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우울과 함께 몸이 축 처지고 여기저기 아픈 분입니다. 노르에피네프린 쪽으로 기운 이 약이 기분과 통증·기운 양쪽을 함께 건드려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신 저는 두 가지를 미리 말씀드립니다. 하나는 하루 두 번 챙겨야 한다는 점 — 빠뜨리기 쉬우니 생활 리듬에 붙여 두시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소변이 시원찮을 수 있다는 점 — 특히 남성분께는 미리 귀띔해 두면, 그런 증상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알려주십니다.

정리하면 익셀은 '첫 번째로 꺼내는 약'이라기보다, 상황에 딱 맞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약'입니다. 이 약의 개성을 알고 자리를 골라 쓰면, 다른 약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빈틈을 메워 줍니다.


익셀은 "SNRI 삼형제 중 가장 노르에피네프린 쪽으로 기운, 그리고 약물 상호작용이 가장 적은 항우울제" 로 요약됩니다. 미국에서는 우울증이 아니라 섬유근육통 약으로 쓰인다는 특이한 이력도, 결국 이 약이 기분과 통증 양쪽에 작용한다는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가장 센 항우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약을 함께 드는 분, 무기력과 통증이 겹친 분에게는, 다른 약에 없는 자리를 채워 주는 든든한 선택지입니다. 약은 '가장 센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익셀은 조용히 보여줍니다.

참고문헌

  1. Montgomery, CNS Spectr 2008
  2. Vaishnavi 등, Biol Psychiatry 2004
  3. FDA 허가사항
  4. Nakagawa 등, 2009
  5. Cipriani 2018
  6. Puozzo·Leonar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