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약은 언젠가 반드시 나옵니다. 할시온(Halcion), 성분명 트리아졸람(Triazolam). 졸피뎀이 나오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면제였고, 동시에 정신과 약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안전성 논쟁의 한복판에 섰던 약입니다. 영국은 끝내 이 약의 판매 면허를 취소했고, 제조사는 소송으로 맞섰다가 졌습니다.

이 약을 이해하는 열쇠는 딱 한 단어, '짧다' 입니다. 할시온은 벤조디아제핀 수면제 가운데 작용시간이 가장 짧은 축에 듭니다. 그래서 눕자마자 잠들게 하고, 아침이 개운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을 늘 조심스럽게 설명합니다. 잠든 직후 몇십 분을 기억에서 통째로 지워버리는 부작용도, 정확히 그 '짧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리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국내에서 오리지널 '할시온'은 벌써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 손에 쥐는 것은 같은 성분의 국산 제네릭입니다. 이 사정도 아래에서 풀겠습니다.

핵심 정보 한눈에

  • 상품명: 할시온(Halcion). 국내 오리지널은 현재 유통되지 않습니다. 국산 제네릭인 졸민정(명인제약), 트리람정(환인제약) 등으로 처방됩니다
  • 성분명: 트리아졸람(Triazolam)
  • 분류: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 향정신성의약품입니다
  • 주 용도: 불면증, 그중에서도 '잠들기 어려운' 입면 장애
  • 흔한 용량: 0.125mg / 0.25mg. 0.25mg를 넘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노인은 0.125mg에서 시작합니다
  • 복용 시간: 취침 직전, 잠자리에 누운 뒤에. 작용이 매우 짧아 먹고 나서 다른 일을 하면 그 시간의 기억이 통째로 비는 일이 이 약에서 가장 잘 생깁니다. 7~8시간 잘 수 있을 때만 씁니다.
  • 듣는 시간: 먹고 15~30분, 붙잡아 주는 건 4시간 안팎입니다. 몸에서 절반이 빠지는 데 2~3시간뿐이라 아침에는 거의 남지 않지만, 그만큼 밤 후반에 다시 깨거나 새벽 불안이 되돌아오기 쉽습니다
  • 가장 큰 장점: 작용이 매우 짧다. 빨리 잠들고, 다음 날 덜 처집니다
  • 가장 큰 단점: 전향성 기억상실(약 먹은 뒤 일을 기억 못 함), 새벽 각성, 반동 불면, 낮 동안의 불안

⚠️ 이 글은 정보 제공용입니다. 약의 시작·변경·중단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오래 복용 중이라면 갑자기 끊지 마세요.

할시온은 어떤 약인가요?

할시온은 1982년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입니다. 같은 계열인 자낙스·데파스와 형제뻘이지만, 이 약은 오로지 '재우는 일'에만 특화돼 있습니다.

작동 원리는 벤조디아제핀 그대로입니다. 뇌의 GABA라는 브레이크를 밟아 각성을 꺼버립니다. 다른 건 오직 속도입니다. 트리아졸람의 반감기는 2~4시간 정도로, 벤조디아제핀 수면제 중 가장 짧은 편에 속합니다.

바로 이 짧음이 1980년대에 할시온을 세계 1위로 밀어 올렸습니다. 그 시절 수면제들은 반감기가 길어 다음 날까지 몽롱하게 남는 '숙취'가 가장 큰 불만이었는데, 할시온은 밤에만 일하고 아침이면 사라졌으니까요.

짧아서 좋은 것, 짧아서 나쁜 것

핵심 — 할시온의 장점과 부작용은 전부 '작용이 짧다'는 한 가지 성질에서 갈라져 나옵니다. 빨리 들어 금방 잠들고 아침에 개운한 것도, 잠들기 직전 기억이 지워지고 새벽에 깨고 낮에 불안해지는 것도 뿌리는 하나입니다. 이 둘은 따로 떼어 가질 수 없습니다.

① 전향성 기억상실, 이 약의 가장 유명한 부작용

'전향성 기억상실(anterograde amnesia)'은 이름이 어려울 뿐 뜻은 단순합니다. 약을 먹은 뒤부터 벌어진 일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멀쩡히 말하고 걸어 다녔는데, 정작 본인만 그걸 모릅니다. 술 많이 마셨을 때의 '필름 끊김'을 떠올리시면 얼추 맞습니다.

트리아졸람은 다른 벤조디아제핀 수면제보다 이 기억상실이 더 잘 나타납니다. 해외에서는 시차 적응하려고 비행기에서 먹었다가 도착 뒤 몇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일이 잦아, '여행자 기억상실(traveler's amnesia)'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여기서 이 약의 첫 번째 안전 수칙이 나옵니다. 먹었으면 바로 누워 자야 합니다. 먹고도 버티며 깨어 있으면, 약이 도는 뇌로 무언가를 하게 되고 그 시간이 통째로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졸피뎀에서 '자다가 냉장고 여는' 일이 벌어지는 것과 원리가 똑같습니다.

② 새벽 각성과 낮의 불안

약이 너무 빨리 빠져나가면 새벽에 약효가 다 떨어져 눈이 떠집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급히 놓친 뇌가 반작용으로 낮 동안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잠들려고 먹은 약이 낮의 불안을 만드는, 좀 얄궂은 그림입니다.

③ 반동 불면

끊으면 원래보다 더 못 자는 며칠이 옵니다. 이때 "역시 이 약 없이는 안 되겠구나" 하고 결론 내리기 쉬운데, 사실은 약이 빠지는 과정의 일시적 반동일 뿐입니다. 이 오해가 장기 복용으로 넘어가는 가장 흔한 길목입니다.

영국은 왜 이 약을 금지했나

이 약이 걸어온 길은 정신과 약 중에서도 유별납니다.

할시온 40년 연표 — 세계 1위 수면제에서 금지된 약으로
할시온 40년 연표 — 세계 1위 수면제에서 금지된 약으로

이 연표를 풀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할시온은 1982년 0.5mg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꽤 센 용량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내내 기억상실, 착란, 환각, 공격성 같은 보고가 쌓였고, 1987년 FDA는 시작 용량을 0.25mg(노인 0.125mg)으로 낮췄습니다. 약이 바뀐 게 아니라, 처음 용량이 너무 높았던 겁니다.

결정타는 영국이었습니다. 1991년 10월, 영국 당국은 할시온의 판매 면허를 정지시켰습니다. 당시 영국 의약품안전위원회(CSM)에는 390건의 이상반응 보고가 접수돼 있었고, 그중 161건이 정신과적 반응이었습니다. 특히 기억상실과 우울이 다른 수면제보다 눈에 띄게 많다는 점이 근거였습니다.

제조사 업존은 세게 반발했습니다. 회장이 직접 나서 "할시온의 회수를 정당화할 과학적·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고 했지만, 1993년 6월 영국은 면허를 정식 취소했고 업존은 고등법원 소송에서 졌습니다. 항소는 유럽사법재판소까지 갔고, 1999년 유럽 법원마저 영국의 손을 들어주며 긴 싸움이 끝났습니다. 할시온은 지금도 영국에서 금지 상태입니다.

다만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영국이 금지했다"는 사실이 곧 "이 약은 마약이다", "먹으면 큰일 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국·일본·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허가된 약이고, 규제 판단은 나라마다 갈렸습니다. 저는 이 사건의 진짜 교훈이 따로 있다고 봅니다 — 용량이 너무 높으면 부작용이 마치 병처럼 보인다. 지금 쓰는 0.125~0.25mg은 그 논쟁을 다 거치고 내려온 용량입니다.

국내 오리지널 '할시온'은 왜 안 보일까

국내에서 오리지널 할시온(한국화이자)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2022년 3월 보도를 보면 한국화이자의 할시온은 수입이 중단돼, 병원들이 환인제약의 트리람정으로 처방을 옮겼습니다. 이후 약학정보원 기록상 할시온정은 2024년 5월 1일자로 보험 급여 목록에서도 삭제됐습니다.

그럼 이제 나쁜 약을 먹게 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처방되는 졸민정(명인제약)·트리람정(환인제약)은 같은 트리아졸람 성분이고, 생물학적 동등성을 인정받아 허가된 약입니다. 오리지널이 빠진 건 품질 탓이 아니라, 특허가 끝난 오래된 약에서 흔히 일어나는 시장 철수일 뿐입니다.

부작용,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

  • 전향성 기억상실, 앞에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먹고 바로 자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입니다.
  • 몽유·이상행동, 자다 일어나 무언가를 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술이 끼면 위험이 확 올라갑니다.
  • 새벽 각성, 낮의 불안·초조
  • 어지럼·휘청거림, 그리고 노인의 낙상. 트리아졸람 단일제가 고령자 낙상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국내에서도 나왔습니다. 밤중에 화장실 가다 넘어지는 사고가 생각보다 흔합니다.
  • 의존과 금단, 벤조디아제핀 계열 공통입니다. 작용이 짧을수록 더 잘 생깁니다.

절대 함께 하면 안 되는 것:

함께 조심해야 할 것, 병용 금기가 뚜렷합니다

트리아졸람은 간의 CYP3A4라는 효소로 분해됩니다. 그래서 이 효소를 막는 약과 함께 쓰면 약 농도가 위험할 만큼 치솟습니다. 이 약에 '같이 쓰면 안 되는 약' 목록이 분명히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무좀약 하나가 수면제를 몇 배로 불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다른 과에서 받은 약은 빠짐없이 알려주세요.

임신·수유 중에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임신 중에 신중하게 다룹니다. 특히 임신 후기까지 쓰면 신생아에게 처짐·호흡 문제·금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모유로도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임신을 알게 됐다며 혼자 끊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반드시 먼저 상의해 주세요.

끊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갑자기 끊지 마세요. 벤조디아제핀을 오래 쓰다 급히 멈추면 불안·불면·떨림을 넘어, 드물게는 경련(발작)까지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트리아졸람은 작용이 짧아 금단이 더 빨리 찾아옵니다.

그리고 반동 불면을 미리 알고 계셔야 합니다. 줄이는 며칠은 원래보다 더 못 잘 수 있는데, 그건 약이 빠지는 과정이지 불면증이 나빠진 게 아닙니다. 딱 이 며칠을 못 넘겨 다시 약으로 돌아가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의사와 함께 천천히 줄이면 대개는 안전하게 정리됩니다. 만성 불면이라면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 를 함께 올리는 것이 길게 봤을 때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영국에서 금지된 약이라던데, 먹어도 되나요? 영국이 금지한 건 사실이지만, 미국·일본·한국에서는 지금도 허가된 약입니다. 논쟁의 중심이던 고용량(0.5mg)은 이미 퇴출됐고, 지금 쓰는 0.125~0.25mg은 그 논쟁을 거쳐 정착한 용량입니다. 의사와 상의해 필요한 기간만 쓰신다면 지나치게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Q. 처방받은 게 할시온이 아니라 졸민정인데요? 성분은 같은 트리아졸람입니다. 국내에서 오리지널 할시온이 수입 중단되면서 국산 제네릭으로 처방되는 것이고, 품질을 걱정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Q. 약 먹고 나서 한 일이 기억나지 않아요. 이 약의 대표적인 부작용(전향성 기억상실)입니다. 먹고 바로 눕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이고, 술과 함께 드셨다면 위험이 훨씬 커집니다. 반복된다면 꼭 알려주세요. 용량을 낮추거나 약을 바꿔야 할 수 있습니다.

Q. 새벽에 자꾸 깨요. 이 약이 안 맞나요? 할시온은 작용이 짧아 잠들기에는 강하지만 긴 밤을 유지하는 데는 약합니다. 새벽 각성이 문제라면 애초에 다른 약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Q. 끊으면 더 못 자던데요? 반동 불면입니다. 약이 빠지는 며칠간의 일시적 현상이지, 불면증이 심해진 게 아닙니다. 이 시기를 의사와 함께 설계해서 넘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술 한 잔이랑 같이는요? 안 됩니다. 이 약에서만큼은 특히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 기억상실과 이상행동의 최대 위험 요인입니다.

💬 전문의 한마디

할시온은 저에게 '용량의 교훈' 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약입니다. 이 약이 세계적으로 두들겨 맞은 이유는 약이 악마여서가 아니라, 처음에 너무 센 용량으로 출발했기 때문이었어요. 0.5mg으로 쓰던 시절의 부작용 보고가 이 약의 평판을 통째로 결정지었고, 정작 지금 우리가 쓰는 건 그 절반 이하입니다. 약을 평가하면서 용량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걸, 이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없습니다.

실제 진료에서 이 약의 자리는 꽤 좁습니다. 눕기만 하면 30분, 한 시간씩 뒤척이는 입면 장애에는 확실히 잘 듣습니다. 반대로 새벽에 깨는 게 문제인 분에게는 처음부터 맞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처방하기 전에 "잠드는 게 힘드신가요, 유지가 안 되시나요"를 꼭 여쭤봅니다. 이 질문 하나로 약이 갈립니다.

그리고 이 약을 드릴 때 제가 반드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드시고 바로 누우세요. 먹고 뭘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약의 사고는 대부분 먹고도 버티다가, 혹은 술과 함께 드시다가 납니다. 약이 위험한 게 아니라 그 조합이 위험한 겁니다. 그것만 지키면, 잠 못 자 괴로운 며칠을 건너는 데 이만한 도구도 드뭅니다.


할시온은 화려하게 떠올랐다가 요란하게 추락했고, 국내에서는 오리지널 이름조차 지워졌습니다. 그런데도 '가장 빨리 잠들게 하는 약'이라는 자리만큼은 여전히 이 약의 것입니다. 다만 그 빠름에는 기억이라는 값이 붙고, 그래서 먹고 바로 눕기·술 금지·짧게 쓰기라는 원칙이 다른 어떤 수면제보다 무겁습니다. 어떤 약이든 나에게 맞는 답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작도 조절도 중단도 전문의와 함께 정하는 게 맞습니다. 잠은 약으로만 되찾아지는 게 아니지만, 약이 그 첫 며칠을 건너게 해주는 다리가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