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목소리가 두 개인 분들을 만납니다.

한 명일 때는 참 다정합니다. 아이 이야기를 할 때, 동료 이야기를 할 때, 심지어 자기를 힘들게 한 상사 이야기를 할 때도 어떻게든 상대 사정을 헤아려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화제가 자기 자신으로 넘어오는 순간, 목소리가 뚝 바뀝니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말투가 바뀝니다.

"제가 못나서 그렇죠." "이것도 못 견디는 제가 한심해요." "다 제 탓이에요."

저는 그럴 때 잠깐 가만히 있다가, 좀 얄미운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친구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도, 그 친구한테 '너 참 한심하다'라고 말하실 건가요?"

대부분 멈칫하십니다. 그리고 정색하며 말씀하세요. "아니요, 친구한테 어떻게 그래요."

네.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친구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모진 말을, 자기 자신에게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그것도 무료로, 무제한으로, 24시간 배달됩니다.

한번 떠올려 보세요. 실수했을 때, 넘어졌을 때,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그 목소리요. 대체로 다정하지 않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넌 늘 이래." "네가 문제야." 이 셋은 거의 3종 세트처럼 붙어 다니죠. 세상이 나를 향해 던지는 비난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비난이 훨씬 더 가혹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은 그래도 가끔 쉬거든요. 내 머릿속 목소리는 안 쉽니다.

이 목소리를 우리가 굳이 끌어안고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채찍질을 해야 정신을 차린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를 몰아세워야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그렇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때리는 사람은 힘이 나기는커녕 점점 더 웅크립니다. 그러다 아예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되고요. 매를 맞으면서 춤이 늘었다는 사람을 저는 아직 못 만나 봤습니다.

여기서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오래 붙들고 연구해 온 개념이 도움이 됩니다. 자기 연민(self-compassion). 이름은 거창한데 뜻은 시시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대하듯, 나 자신을 대하는 것."1

네프는 이걸 세 갈래로 나눠 설명합니다.

  • 나에게 다정하기: 실수한 나를 취조하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 많이 힘들었지" 하고 말해주는 것. 처음엔 손발이 좀 오그라듭니다. 그래도 합니다.
  • 혼자가 아님을 알기: '이렇게 무너지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흔들리고 실패하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에요. 진료실 문을 하루 종일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정말로요. 당신만 불량품으로 출고된 게 아닙니다.
  •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기: 괴로움을 억지로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그 안에 풍덩 빠져 허우적대지도 않고, "지금 내가 많이 아프구나" 하고 담담히 바라보는 것.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종종 이런 반응이 돌아옵니다. "그럼 자존감을 높이라는 거네요?"

조금 다릅니다. 네프는 자존감에 대해 꽤 매서운 지적을 하나 합니다. 자존감은 '날씨 좋을 때만 곁에 있는 친구' 같다는 거예요1. 잘나갈 때, 남보다 좀 나을 때는 어깨동무하고 있다가, 정작 내가 바닥에 엎어져서 가장 손이 필요한 순간에 훌쩍 사라집니다. 애초에 "남보다 잘나야" 유지되는 감정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비교로 지은 집은 비교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집니다.

자기 연민은 그런 조건을 안 겁니다. 잘될 때도, 바닥일 때도 똑같이 나를 지켜줍니다. 남보다 나을 필요도 없고, 오늘 뭔가를 잘 해냈어야 할 필요도 없어요. 아픈 나에게 다정하기로 마음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순간에, 오히려 더 힘이 셉니다.

물론 여기서 꼭 나오는 반문이 있습니다. 저도 한때 똑같이 생각했고요.

"그거 그냥 자기 합리화 아닌가요? 자신한테 너무 관대하면 나태해지지 않아요?"

결과는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연구들은 오히려 자기 연민이 높은 사람이 실패 후에 더 잘 회복하고, 다시 도전하고, 책임도 더 잘 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곱씹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어요. 넘어진 선수한테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코치와, "이 한심한 놈"이라고 소리 지르는 코치가 있다고 칩시다. 어느 쪽 팀에서 더 오래 뛰고 싶으세요.

자기 연민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다시 일어설 때 발을 딛는, 무너지지 않는 바닥에 가깝습니다. 자책은 그 바닥마저 빼버리는 일이고요.

세상은 이미 우리한테 충분히 모집니다. 굳이 당신까지 거기 합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 적어도 당신만은 당신 편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오늘 밤, 또 그 혹독한 목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오면 이렇게 한번 바꿔치기해 보세요. 가장 아끼는 친구가 지금의 당신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면 뭐라고 해줄지 떠올리고, 그 말을 당신 자신에게 그대로 건네는 겁니다. "많이 애썼어." "그럴 만했어."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 대단해."

낯간지러워도 괜찮습니다. 다정함도 결국 연습이니까요. 처음 몇 번은 대사 외우는 배우처럼 어색할 겁니다. 그래도 몇 주쯤 지나면, 실수한 다음 날 아침에 튀어나오는 첫 문장이 조금 달라져 있을 때가 옵니다.

어차피 세상에서 당신과 가장 오래 붙어 있을 사람은, 당신 자신이잖아요. 그 긴 동거를 매일 싸우면서 보내기엔, 우리 인생이 좀 아깝지 않습니까.


이 글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 편하게 쓰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자책과 무력감이 오래 이어지거나 감당하기 힘들다면, 혼자 견디지 마시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24시간)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참고문헌

  1. Kristin Neff